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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가을 냄새’? ‘가을 내음’?

다음 중 복수 표준어가 아닌 것은?   ㉠냄새-내음  ㉡날개-나래   ㉢손자-손주  ㉣발자국-발자욱   가을이 깊어 가면서 단풍 등 가을의 아름다운 모습을 SNS에 올릴 일이 많다. 이런 경우 제목을 ‘가을 내음’ ‘가을 냄새’ 가운데 어느 것으로 해야 할까?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내음’을 써도 된다. 과거에는 ‘냄새’만 표준어로 인정했기 때문에 일반 글에선 ‘내음’이란 말을 쓰지 못했다. 시적 허용이라고 해서 문학작품에서나 ‘내음’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2011년 국립국어원이 ‘내음’도 표준어로 인정함으로써 지금은 일반 글에서 ‘내음’을 써도 아무 문제가 없다.   사전은 ‘내음’을 코로 맡을 수 있는 나쁘지 않거나 향기로운 기운이며, 주로 문학적 표현에 쓰인다고 풀이해 놓았다.     ㉡의 ‘나래’ 역시 ‘날개’의 비표준어로 취급받아 오다 표준어로 인정됐다. ‘나래’는 ‘날개’보다 부드러운 어감을 주면서 ‘상상의 나래’ ‘희망의 나래’ 등처럼 쓰일 때 잘 어울린다. ㉢의 ‘손주’ 또한 ‘손자’의 사투리로 취급돼 오다 표준어가 됐다. 다만 ‘손자’가 아들의 아들 또는 딸의 아들을 가리키는 것에 비해 ‘손주’는 손자와 손녀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 풀이돼 있다.   ㉣의 ‘발자욱’은 ‘사랑의 발자욱’ ‘가을 발자욱’ 등처럼 노랫말·시어 등으로 많이 쓰이고 있지만 아직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정답은 ㉣.우리말 바루기 가을 냄새 가을 내음 가을 냄새 가을 발자욱

2023-11-05

[우리말 바루기] 가을 내음

가을이 깊어가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요즘 ‘가을 내음’이라는 제목의 글이 점점 늘고 있다. ‘가을 내음’이란 말에서는 어딘지 가을의 정취가 배어 나온다. 만약 ‘가을 내음’을 ‘가을 냄새’라고 하면 어떨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이 “에이, 그럼 맛이 안 나지”라고 할 것이다.   과거에는 ‘내음’이 경상도 방언으로 취급돼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일반 글에서는 ‘내음’ 대신 ‘냄새’라는 말을 사용했다. 하지만 ‘내음’에는 ‘냄새’가 갖지 못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시 등 문학작품에서는 이전부터 계속해 사용돼 왔다. 그래서 이를 ‘시적 허용’이라고 했다. 그러다 2011년 마침내 국립국어원이 ‘내음’을 표준어로 인정함으로써 지금은 일반 글에서 사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내음’과 ‘냄새’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전은 ‘내음’을 코로 맡을 수 있는 나쁘지 않거나 향기로운 기운이며, 주로 문학적 표현에 쓰인다고 풀이해 놓았다. 그러니까 ‘바다 내음’ ‘흙 내음’ ‘시골 내음’ ‘고향 내음’ 등처럼 어떤 정서나 정취가 풍기는 표현으로 잘 어울린다.   반면에 ‘냄새’는 코로 맡을 수 있는 온갖 기운을 가리킨다. 즉 ‘냄새’는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현상 이상을 나타내지는 못한다. 따라서 ‘가을 내음’에는 ‘가을 냄새’가 담을 수 없는 가을의 독특한 향기나 분위기, 정서, 정취가 모두 스며 있는 것이다.   ‘내음’과 함께 복수표준어로 인정된 것 가운데는 ‘나래(날개)’ ‘짜장면(자장면)’ ‘손주(손자)’ ‘복숭아뼈(복사뼈)’ ‘메꾸다(메우다)’ 등이 있다.우리말 바루기 가을 내음 가을 내음 가을 냄새 시골 내음

2022-10-27

[시로 읽는 삶] 가을 냄새

서울역의 시끌벅적한 푸드코트 한 쪽에/ 젊은 부부가 음식을 먹고 있다/ (…)그러다 뭐라 뭐라 열심히 수화를 하고/ 미소를 끄덕인다/ (…)/ 잘 익은 과육 단내가/ 삭막한 서울 한복판을 점령하는 가을이다/ 무엇으로도 침해할 수 없는 신성이 어여쁘게/ 문명의 일상을 물들이는 가을이다.    배한봉 시인의 ‘가을이 지구를 방문하는 이유’ 부분       산길을 걷는다. 낙엽이 쌓여있는 조붓한 등산로는 결 고운 카펫처럼 폭신하다. 갈참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가 사람들의 정수리를 건드리기도 한다. 산 중턱엔 벌써 견장처럼 달고 있던 이파리 다 떨어진 나무들 어깨가 훤하고 고사목 둥치엔 새들이 모여 겨울준비를 하는지 잰걸음으로 수선을 떨기도 한다.     가을은 가을의 냄새가 있다. 오랜만에 고향 집 대문을 밀고 들어설 때 훅하고 풍겨오는 냄새 같은 것. 볏짚 사이에서 발효되는 청국장 냄새 같기도 하고 장독대 묵은 장맛 같기도 한. 그립고 낯익은, 향기라고 하기보다 냄새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산자락에서 누렇게 말라가는 풀 냄새, 야생 블루베리 군락지가 취기 돌아 얼큰해지는, 이끼 앉은 바위틈새에서 나는 물비린내,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가을 산은 어머니의 체취처럼 편안하다.     가을 냄새는 잘 견뎌온 것들의 자부심이라고 말해 본다. 가을의 냄새는 잘 익은 열매의 겸손함이라고도 말하고 싶다. 열정에만 기대지 않고 회한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겸허함이라고 하고 싶다.     가을엔 소리의 경쾌함도 좋다. 후드득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 골목 모퉁이로 모여드는 낙엽 구르는 소리. 콩꼬투리 타다닥 벌어지는 소리. 잘 여문 것들이 저절로 아람 벌어지는 소리는 생명의 에너지이다.   가을이 지구를 방문하는 이유는 신성을 체험하게 하려는 걸까. 늙은 갈참나무가 잘 영근 도토리를 떨굴 때 나무의 밑동에 앉아 그 소리를 듣자면 하나님이 피조물을 아우르시는 방법을 생각해 보게 한다. 계절의 간극 사이로 흘러가는 시간을 통해 살고 죽는 일이 아름다운 순환이라는 걸 알게 된다. 생명은 하나님의 권한, 어떤 존재도 생과 사를 맘대로 할 수는 없을 터, 순환의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다.   가을엔 도처에 신성한 기운이 있다. 땅은 온유함으로 죽은 것들을 품었다가 다시 소생시킬 것이다. 잎 진 나뭇가지 사이로 스미는 햇살은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오는 좋은 소식 같은 것, 단감을 한 입 깨물 때 혀끝에서 맴도는 단맛은 지나간 계절에 대한 배웅 아닌가 싶다.     가을엔 완전연소를 꿈꿔본다. 잘 탄 장작은 그을음이 남지 않는다. 하루를 사는 일, 일 년을 사는 일도 땀의 최대치였다면 후회 따위는 남지 않을 것이다. 그을음만 가득한 타다가 만 장작처럼은 되지 말라는 지침은 가을이 주는 선물이다.   가을은 관용구를 많이 인용한 문장 같다. 가을이 삶의 이치를 잘 알고 받아들이는 까닭이다. 이치를 안다는 건 하나님의 섭리를, 창조의 의미를 안다는 것 아닐까. 산모퉁이에서 흔들리는 잡초도 이 가을엔 삶의 지혜 하나쯤을 습득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을이 보여주는 풍경은 비록 소멸일지라도 비애가 아닌 경건이다.   피로감만 늘어가는 우리의 일상을 어여쁘게 물들이며 깊어 가는 가을,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기도도 깊어진다. 조성자 / 시인시로 읽는 삶 가을 냄새 가을 냄새 가을 하나님 청국장 냄새

202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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